좌습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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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6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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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6품 관직.
내용

목종 때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며, 1116년(예종 11)에 좌정언(左正言)으로 개칭되었다. 품계와 정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좌정언의 예에서 보듯이 종6품, 정원 1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를 구성하고 있으면서 간관으로서 간쟁(諫諍)·봉박(封駁)에 참여하였다. 이후 좌정언은 1308년(충렬왕 34)에 정6품의 좌사보(左思補)로 바뀌었다가 1356년(공민왕 5) 다시 좌정언으로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2년(태조 1)에 관제가 새로이 마련되면서 문하부(門下府)의 정6품 관직으로 좌습유가 두어졌으며, 1401년(태종 1)에는 다시 좌정언으로 개칭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조선초기(朝鮮初期) 언관(言官)·언론연구(言論硏究)』(최승희, 한국문화연구소, 1976)
『고려시대대간제도연구(高麗時代臺諫制度硏究)』(박용운, 일지사, 1980)
「고려(高麗)의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대하여」(변태섭, 『역사교육(歷史敎育)』10, 1967 ;『고려정치제도사연구(高麗政治制度史硏究)』, 일조각,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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