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중추원 정3품의 관직.
내용
지주사(知奏事)·우승선·좌부승선·우부승선과 함께 승선방(承宣房)에서 집무하면서 교대로 왕궁에 직숙(直宿)하여 왕명을 출납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었고, 상좌(尙左 : 왼쪽을 높임.)의 원칙에 따라 우승선보다 상위직이었다.
1095년(헌종 1)에 중추원이 추밀원(樞密院)으로 개편될 때에도 아무런 변동없이 그대로 존속하였다. 그러나 1275년(충렬왕 1)에 원의 간섭에 의하여 추밀원이 밀직사로 격하되자, 그 다음해에 좌승지로 바뀌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좌대언(左代言)으로 고쳐졌다.
1356년(공민왕 5) 반원정책의 일환으로 문종 관제가 복구됨으로써 다시 설치되었지만, 1362년 또 다시 좌대언으로 바뀌었다. 1369년에도 좌승선으로 환원된 적이 있으며, 그뒤 다시 좌대언으로 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1433년(세종 15)에 좌승지로 고쳐졌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 「고려(高麗)의 중추원(中樞院)」(변태섭,『진단학보(震檀學報)』41,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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