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27결사대에서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이탁(李鐸)·이우영(李宇榮)·차병제(車秉濟)·손창준(孫昌俊) 등 27명의 대원들과 입국, 같은 해 3월 3일 고종의 국장일에 참석하는 이완용(李完用) 등 5적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이탁이 권총을 준비하지 못하여 거사하지 못하였다.
그 해 3월 15일에 이탁으로부터 권총과 탄환을 지급받고 거사할 기회를 엿보던 중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손창준·차병제와 함께 무교동 박홍일(朴泓鎰)의 집에 가서 500원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경계가 삼엄하여 5적암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중 6월 5일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0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4년 만에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 『동아일보(東亞日報)』(1920.9.3·19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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