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장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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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작품
조선 중기에 권필(權韠)이 지은 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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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권필(權韠)이 지은 전(傳).
내용

조선 중기에 권필(權韠)이 지은 전(傳). 일종의 우언소설(寓言小說)이다. 『석주외집(石洲外集)』 권1에 게를 의인화한 「곽삭전(郭索傳)」과 함께 실려 있어 술을 의인화한 가전(假傳)으로 보기도 한다. 주사장인(酒肆丈人)은 그 성명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도(道)를 갖추었으면서도 주막에서 술 장사를 하면서 숨어 지내는 방외인적(方外人的)인 요소를 갖춘 인물로 보아 자신의 심회를 의탁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주사장인과 역학(易學)에 정통하여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송나라의 학자 소옹(邵雍)과 정자(程子)로 되어 있다. 주로 주사장인이 소옹을 질책하고, 소옹은 변명을 하다가 결국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자가 이 소문을 듣고 주사장인을 은자라 하여 제자들에게 찾아가 보도록 하였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정자를 등장시켜 주사장인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소옹의 학문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현허(玄虛 : 현묘한 모양. 또는 그 이치)한 당시의 성리학 전반에 대한 문제점의 제시라고 볼 수도 있다.

「주사장인전」은 우언의 형식을 통하여, 조선시대 지나치게 사변적(思辨的)이고 분석적(分析的)인 방법으로 공리공론화한 성리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였다. 천지의 운행원리를 음양(陰陽)·오행(五行) 등으로 나누어 인위적으로 규명하려한 것을 비판하였다.

곧,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그은 이후로 큰 조화는 흩어졌다. 문왕(文王)이 육십사괘(六十四卦)로 부연하고 공자가 십익(十翼)을 지음으로 해서 원기가 흩어졌다. 이에 천하의 지혜로운 사람이 어지러이 일어나서 ‘나는 역상(易象)을 잘 이야기한다.’라고 말하고, 서로 더불어 꿇어앉아 이야기하기를, 강유(剛柔)·소장(消長)의 분변을 하였다.”라고 했다.

또 소옹의 선천지학(先天之學)을 비판하여, “기이함을 자랑하여 풍속을 현혹시키고, 거짓을 뽐내어 세상을 유혹하니, 아아!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은 그대의 말이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술의 혼연(渾然)한 맛을 가지고 도(道)의 본래의 모습을 비유하였다.

조선은 건국한 이래로 성리학으로써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러나 중기 이후로 공리공론화하여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였는데, 성리학에 빠진 대부분의 성리학자들은 그 문제점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권필 같은 비판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예리하게 그것을 지적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것은 당시 성리학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던 조선의 학문적인 경향에 일침을 가한 올바른 말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분위기에서 대단한 용기가 있지 않으면 이런 비판을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작자는 우언소설이란 형식을 빌려서 성리학자들의 직접적인 반격을 피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석주집(石洲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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