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삭주 출생. 1900년 선천 미동병원에서 일하다가 상경, 세브란스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908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평안북도 선천에서 인제의원을 개설하였다.
3·1운동 때 33인 중 한 사람인 선천교회목사 양전백(梁甸伯)에게 감화되어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른바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6년간 복역하였다. 1921년에는 상해로 망명, 흥사단에 가입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조달에 진력하였다.
1927년 귀국 후 선천에서 사재를 털어 대동고아원을 창설하였는데, 이는 도내 유일의 고아원이었다고 한다. 한편, 1938년에는 ‘동우회사건’에 연루,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2년에는 미국선교사를 통하여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송금한 사실이 탄로되어 검거,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60세를 일기로 유치장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