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정사(竹精寺)라고도 하였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전설에 의하면 옛 부터 이 부근에 대나무가 많아 봉황(鳳凰)이 서식하였으므로 산 이름을 금봉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죽정사라 하였다고 한다.
옛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과 순치 9년(順治九年, 1652)이라고 적힌 기명와(記銘瓦)의 출토로 그 이전에는 현존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빈 절이 되었다. 그 때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사찰의 목재를 철거하여 진영청사(鎭營廳舍)인 청녕헌(淸寧軒)과 제금당(製錦堂)을 지었다. 제금당은 1983년에 복원하였으며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을 갖추고 있고, 기단부에는 복련문(伏蓮文)과 안상문(眼象文)이 조각되어 있다. 현재, 이 탑은 3층의 탑신(塔身)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