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천고 ()

유교
문헌
대한제국기 때의 관료, 박정양의 포쇄일기 · 기주일기 · 시 · 서(書)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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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의 관료, 박정양의 포쇄일기 · 기주일기 · 시 · 서(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서지적 사항

25권 18책. 영인본.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

내용

제1책에 포쇄일기(曝曬日記), 제2책에 기주일기(記注日記), 제3책에 사변일기(事變日記), 제4책에 복명서(復命書) 15편, 제5책에 남유일기, 제6책에 서(書) 32편, 제7책에 시 72수, 예의 2편, 부(賦) 1편, 계(啓) 21편, 주(奏) 4편, 소(疏) 11편, 차(箚) 8편, 표(表) 3편, 사(辭) 3편, 설(說) 3편, 제8∼12책에 종환일기(從宦日記), 제13책에 소 32편, 서(書) 5편, 제14·15책에 종환일기, 제16책에 승선일기, 제17책에 사일기, 제18책에 기(記) 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포쇄일기」에서는 당시의 사상과 감정을 생활사에 비유해 국문가사체로 상세히 기록하였다. 「기주일기」에서는 궁중에서 왕과 학문을 논한 내용을 한글로 기록하고, 『소학』에 장재(張載)의 교만과 태만의 습성에 대해 강론하면서 성인의 도학과 성품을 지녔어도 교만하고 태만하면 의논할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사변일기」에서는 최우형(崔遇亨)이 상소를 올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잠입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예의 도덕과 미풍양속을 문란하게 할 염려가 있으니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청한 일, 정부에서는 국적이라 규정짓고 토벌령을 내려 연루된 자를 귀양 보낸 현황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경상좌도어사복명(慶尙左道御史復命)」은 경상좌도어사로서 1년간 활동한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대마도(對馬島)의 면적·거리·풍습, 왜관에 출입한 상선과 인원 등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서(書) 가운데 「서민판서응식(書閔判書應植)」은 주미전권공사로 있을 때 민응식에게 보낸 것이다. 청국 공관에서 한국을 조회한 격식에 주서(硃書)로 공사의 명칭을 쓰지 않고 성명을 쓴 점 등을 들어, 이 일이 만약에 신문지상에 보도되어 다른 나라에서 알게 되면 국체와 국익에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됨을 알리고, 그에 대한 본국의 훈령을 기다린다는 것, 언어와 문자에 불통한 이하영(李夏榮)을 서기관으로 보낸 점, 재정결핍으로 타국에 신의를 잃을까 염려된다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초기 외교의 미숙하고 빈약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대통령이 베푼 연회에서 관복과 목화(木靴)를 착용하는 등 민족자존의 정신을 과시하고, 청국의 불평등한 취급에 대해 항변한 내용을 볼 때 외교관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제10책에는 1881년(고종 18)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시찰하고 온 일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의회제도에 대해서는 성·현·구 3단계로 나누어 1년에 정기 1회, 임시 1회씩 개최되어 모든 분야의 정책이 입안되는 사항 등을 자세히 논술하였다. 제12책은 1889년에서 1894년까지의 일기이다. 그 내용 가운데 1889년 1월 1일 일본 공관에 태극기를 게양한 것을 축하해 공사 김가진(金嘉鎭)에게 전문을 보낸 사실이 있다.

제13책에는 1888년 청나라 참찬관(參贊官) 서수명(徐壽命)·팽광예(彭光譽) 등과 필담으로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의 전문 내용 중 본국 왕의 윤허를 받기 전에 청국공사에 먼저 보고할 것, 청국공사와 같이 미국공사를 만날 것, 이런 사실을 타국에 누설시키지 말 것 등의 강요 사항에 대해 논쟁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제15책은 1895년에서 1898년까지의 일기로 갑신정변과 을미사변 등에 관한 사실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기의 「주은소초기(鑄銀所草記)」에는 전환국을 신설하고 은(銀)과 동(銅)으로 화폐를 만들어 국민들의 편익을 도모한 사실이 적혀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한말 진보적인 개화사상을 가지고 있던 인물의 문집으로, 당시 정치 및 사회 사정을 살펴볼 수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크게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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