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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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종2품 무관직으로 각 군영(軍營)의 대장 또는 사(使)에 버금가는 장관(將官).
목차
정의
조선시대 종2품 무관직으로 각 군영(軍營)의 대장 또는 사(使)에 버금가는 장관(將官).
내용

총리영(摠理營)과 진무영(鎭撫營), 각 도의 순영중군(巡營中軍)은 정3품직이다. 각 영에서 대장 또는 사를 보좌하면서 모든 실무를 총괄하였다.

5군영의 중군은 번갈아 가며 병조 능마아청(能麽兒廳)의 당상관을 겸하였다. 용호영의 중군은 금위별장을 겸하기도 하였으며, 금군별장과 함께 초관(哨官)·교련관(敎鍊官)을 시취(試取)하였다.

훈련도감의 중군은 훈련도감의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의 군안(軍案)을 관리하면서 모군(募軍) 보충을 결정하는 한편, 각 초의 색복마(色卜馬)를 주관하여 봄·가을로 검사하였다. 매달의 훈련 및 고시도 감독하였다.

중군의 유사시에는 당상장관 중에서 겸중군(兼中軍)을 임명하였다. 습진(習陣) 때에 중군기(中軍旗)와 북은 좌·우 각 별장이 거느리고 중앙에 위치하였다. 이 때 중군수기의 명칭은 조금씩 달랐는데, 훈련도감의 중군은 삼군사령, 금위영·어영청·수어청·총융청의 각 중군은 금위군사령·어영군사령·수어제군사령(守禦諸軍司令)·총융제군사령이라 하였다. 국왕을 배호(陪扈)할 때 국왕이 융복을 입으면 중군은 대장과 함께 갑주를 착용하였다.

옛 규례에 총융사의 경력을 지닌 자가 훈련도감의 중군으로 많이 임용되었다. 그러나 1783년(정조 7) 총융사 서유대(徐有大)가 전임이 되면서 겸임이 폐지되었다. 총융청의 중군은 북한산성관성장(北漢山城管城將)을 겸하였다. 또, 삼도통어영·삼도통제영의 중군은 수군(水軍) 조련시 여러 배를 거느리고 훈련하였다.

중군의 시예(試藝)는 편전(片錢)을 1순(旬)하는데 5시(矢) 명중하면 무명 10필, 삼베 8필, 쌀 3석, 활 1장을 포상하였으며 4시 이하는 차차 감하였다.

요록(料祿)은 군직록(軍職祿)과 각 도에서 떼어서 지급하는 요를 받는데, 은결수미(隱結收米)·별급미(別給米)·아록춘미(衙祿春米) 등을 지급받았다.

참고문헌

『만기요람(萬機要覽)』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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