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말기 14관등 중 7등급에 해당하는 대형의 관등에 있는 자로서 특정업무를 담당하던 자가 가졌던, 일종의 관직과 같은 성격을 지닌 관등명이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아들 남생(男生)은 중리소형·중리대형·중리위두대형을 역임하였다.
이 중리는 내리(內裏)에서 복무하던 국왕 직속의 소수 측근들에게 부여된 제도적인 칭호였다. 남생이 중리대형의 직위를 차지한 것에 대하여, “국정을 관할하여 모든 정령(政令)을 주관하였다.”라고 『신당서(新唐書)』 남생전에서 해설하였다.
고구려 말기의 중리대형은 왕의 측근에 있으면서 왕명의 출납과 국가의 주요업무를 관장하였던 지위였다. 관등인 대형과 관직과 같은 성격의 중리가 합해진 명칭에서, 아직도 관등과 관직이 확연히 분화되지 못한 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