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절은 고려 태조가 신라가 황룡사9층탑을 건립하고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던 예에 따라 서경에 9층탑을 세우고 창건한 사찰이다. 그러나 1010년(현종 1) 11월에 거란 병에 의하여 전소되었으며, 1051년(문종 5)에 중수하였으나 3월에 공사를 중단하였다.
이 절에는 태조의 뜻을 받들어 역대의 왕들이 자주 찾았는데, 1053년 10월과 1087년(선종 4) 10월, 1102년(숙종 7) 8월에 각각 왕이 행차하였다. 1110년(예종 5) 5월과 1130년(인종 8) 9월에는 9층탑에 벼락이 떨어졌으며, 1134년김부식(金富軾)이 묘청(妙淸)의 난을 진압할 때 이 절의동편과 서편에 군사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1154년(의종 8) 9월에 중창하였으며, 1201년(신종 4) 5월에는 절의 기둥에 벼락이 떨어졌다. 특히, 고종은 재위기간(1214∼1259)중에 화재로 소실된 이 절을 중창하기로 하고, 용왕(龍王)이 환희할 것을 기원하거나 전쟁에 희생된 자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네 차례 금광명경도량(金光明經道場)을 개최하였다. 우왕 때에는 이 절에서 진병법석(鎭兵法席)이 열렸다. 이 절은 호국 사찰로서, 고려 태조 이래 왕실의 지극한 비호 아래에서 유지되었다. 그러나 그 폐사 시기는 전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