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비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제22대 정조 관련 금석각. 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환일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3일
지지대비 미디어 정보

지지대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제22대 정조 관련 금석각. 비.

내용

비의 높이 150㎝, 너비 60㎝.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문을 통하여 정조(正祖)의 부왕에 대한 사모의 정을 엿볼 수 있다.

비문의 내용 중 “우리 전하께서 능원을 살피시고 해마다 이 대를 지나며 슬퍼하시고 느낌이 있어 마치 선왕을 뵙는 듯 하시어 효심을 나타내시어 여기에 새기게 하시니, 선왕께서 조상의 근본에 보답하고 너그러운 교훈을 내리시는 정성과 우리 전하께서 선대의 뜻과 일을 이어 받으시는 아름다움을 여기에 그 만의 하나로 상고했도다.

”라는 사실에서 정조의 애틋한 심정이 드러난다.

정조는 부왕(父王) 장헌세자(莊憲世子)의 원침(園寢)인 현륭원(顯隆園) 전배(展拜 : 종묘 · 능침 등에 참배함)를 마치고 환궁하는 길에 지지대에서 행차를 멈추게 하였는데, 이곳에서 멀리 현륭원이 있는 화산(花山)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휴식을 취한 뒤에도 이곳을 떠나기가 아쉬워 정조의 행차는 항상 이곳을 느릿느릿 움직였고, 이에 따라 이곳을 지지대라 부르게 되었다.

지지대비는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서영보(徐榮輔)가 찬(撰)하고, 전판돈녕부사겸판의금부사(前判敦寧府使兼判義禁府使) 윤사국(尹師國)이 글씨를 쓰고, 수원부유수겸총리사(水原府留守兼總理使) 홍명호(洪明浩)가 비의 상단 전자(篆字)를 썼다.

숭정기원후일백팔십년정묘십이월일입(崇禎紀元後一百八十年丁卯十二月日立)이라는 사실로 1807년(순조 7) 12월에 건립됨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격전으로 비신의 곳곳에 탄흔이 남아 있고, 비문이 결락(缺落)된 곳도 나타난다.

참고문헌

  • - 『경기도사(京畿道史)』

  • - 『경기도금석문(京畿道金石文)』

  • - 『수원시사(水原市史)』

  • - 『경인문화재총람(京仁文化財總覽)』

  • - 『경기도문화재대관(京畿道文化財大觀)』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