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양이씨(興陽李氏). 자는 응문(應文), 호는 충허(冲虛). 2세에 어머니가, 13세에 아버지가 죽었으며, 1745년(영조 21)에 출가하였다. 노장(老莊)을 즐겨 『도덕경(道德經)』 등을 읽었으며, 경론(經論)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이름을 날렸다.
1754년 사람들의 청에 따라 영수사(靈水寺)에서 개강하자 70여 명이 모였는데, 10여 년을 가르쳤다. 뒤에 자취를 감추어 지리산 벽송사(碧松寺), 성주 불영산 청암(靑庵), 군위 화산의 백암(白庵), 풍기 봉명산의 내원(內院), 문경 희양산의 동전(東殿), 함창 칠봉산의 중암(中庵) 등지에 머물렀다.
시에 능하여 많은 유학자들과 교유하였고, 역술(曆術) 및 의방(醫方)에도 능통하였으며, 보시를 좋아하여 밥을 남겨 까치와 까마귀를 기르니 새들이 떼를 지어 뒤를 따라다녔다고 전한다. 그에게는 은사(恩師)인 시원(時垣), 계사(戒師)인 벽허(碧虛), 법사(法師)인 쌍운(雙運) 등 세 스승이 있었으며, 하담(荷潭)·남파(南坡)·보한(普閑)·승필(勝必)·우인(宇仁) 등 뛰어난 제자들이 뒤를 이었다. 저서로는 『충허집』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