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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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의주목에 설치된 서반(西班) 토관직(土官職) 군관(軍官)의 둔소(屯所).
제도/관청
  • 상급 기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현영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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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평안도 의주목에 설치된 서반(西班) 토관직(土官職) 군관(軍官)의 둔소(屯所).

내용

토관직은 원래 고려시대의 향직(鄕職)에서 유래된 것으로 평안도나 함경도 및 제주도와 같은 변방지역에 대한 우대책으로 특별히 설치된 관직체계이다.

의주는 국가의 문호로서 사신의 내왕이 빈번하고 사신을 지대(支待)하기가 어려워서 호구가 날로 감소하였다. 이에 국가에서는 호구의 감소를 방지하고자 평양과 영변의 토관을 나누어서 의주에 설치할 것을 논의하였다.

결국 영변의 진변위(鎭邊衛)에서 17인을 옮기고 13인을 가설(加設)하여 총 30인, 2영(領)의 진강위를 설치하였다.『경국대전』에서는 1영 18인으로 그 수효가 감소되었다.

참고문헌

  • - 「조선초기(朝鮮初期)의 토관(土官)에 대하여」(이재룡, 『진단학보』29·30합집, 1966)

  • - 「十五世紀朝鮮の土官制-李朝初期地方支配體制の一斷面-」(吉田光男, 『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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