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진윤서(陳倫叙). 아버지는 선무랑 진의윤(陳義胤)이다. 적성(積城)에서 살았다. 남인계열의 인물이다. 아버지의 나이가 많았는데 항상 얼굴빛을 정성스럽게 하여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들었다.
병자호란 때에 아버지와 함께 금성(金城) 산골짜기로 피난하였다가 청나라의 군대와 부닥쳤는데, 적군이 아버지를 칼로 내려치려 하자 몸으로 막아 구하였으나 자신은 중상을 입고 사흘 뒤에 죽었다. 처자에게 오직 봉양하라는 몇 마디 말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일이 알려져 1640년(인조 18) 인조가 그의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효자 진구주의 마을’이라고 명명하였다. 허목(許穆)이 진구주의 묘갈명(墓碣銘)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