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은 우산(禹山) 서쪽 기슭 산성하고분군의 남단 가까이에 있으며, 고분의 서쪽 100여 m 거리에 통구하가 흐른다.
산성하 제332호 벽화묘는 통구하를 향해 뻗은 우산 서현 기슭의 7열로 이루어진 수십 기의 봉토분 중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의 하나이다.
고분의 지면 직경은 10m, 봉토의 높이는 4m 가량이다. 묘도·장방형전실·용도·현실로 이루어진 2실분으로 묘도의 방향은 남향이다.
현실 서벽에서 40㎝ 거리에 관대(棺臺) 1개가 설치되었고, 천장구조는 9층평행굄이다. 현실 네 벽·바닥·천장부·관대 등 묘실 내부 전면에 걸쳐 1∼3㎝ 두께의 백회를 입혔다. 현실 동·서·북벽 상부에 40∼50㎝ 간격으로 벽마다 6개의 못이 5㎝ 깊이로 박혀 있는데, 만장(幔帳)을 거는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
묘실 네 벽 및 천장부와 용도 양벽에 벽화가 그려졌다. 도굴구멍으로 흘러든 빗물의 습기로 인해 전실의 벽화는 모두 박락되었으나, 용도 및 현실의 벽화는 상당부분 남아 있다.
현실 네 벽은 구름무늬와 ‘(王)’자 도안으로 장식되었다. 누른 색과 검은 색이 사용된 예서체의 ‘王’자 도안은 무려 2,000개에 달한다. 이 ‘王’자 도안은 갑신총 및 장천 제2호분 묘실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현실 네 벽과 천장굄부 경계지점에는 검은 들보를 그려 벽과 천장부로 나누었다. 천장부에는 5잎 연꽃의 측면모습을 다수 그려 넣었다.
전실과 현실 사이의 통로인 용도 양벽에는 수렵도를 그렸으나 박락과 퇴색으로 인해 현재에는 말을 달리면서 활을 당기려는 기마인물, 쫓기는 호랑이, 소반을 든 여인 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도굴로 인해 철제·금동제·도기편(陶器片) 10여 점만이 수습되었다. 고분의 구조, 묘실에 장식된 벽화내용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벽화묘는 대략 4세기 말경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