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현 통구평야 중앙부에 소재한 5기의 대형 봉토석실분 중 하나로 동편에 인접한 통구 5호분과 함께 묘실의 화려한 벽화로 잘 알려져 있다.
광복 전 일제에 의한 5회분(五盔墳) 발굴조사시 미편호(未編號) 상태로 있다가 1962년 중국 길림성박물관의 재조사시 돌방 내부의 벽화가 발견되어 ‘통구 4호분’으로 명명되었다. 근접한 통구 5호분과 벽화의 내용이나 기법이 매우 흡사해 거의 같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방추형(方錐形)의 봉토분으로 봉토는 높이 약 8m, 둘레 160m 가량이다. 묘실은 묘도·연도·현실 3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묘도는 길이 6m이며, 연도는 길이 1.88m이며, 현실은 동서 너비 4.02m, 남북 길이 3.68m, 천장 높이 3.64m이다. 연도는 동쪽으로 치우쳤고 묘실의 방향은 동남향이다.
묘실은 잘 다듬어진 넓은 판석(板石)을 이용해 축조되었다. 묘실 천장은 3단의 삼각굄이다. 묘실에는 3개의 관대를 나란히 놓았고, 남벽 입구 서측벽에 붙여 석상(石床)이 놓여 있다.
벽화는 석면(石面)을 수마(水磨)한 위에 직접 그렸으며, 색채가 화려하고 내용이 풍부하다. 적색·갈색·녹색·황색 등을 주된 색조로 하고 농담에 의한 색채효과가 주목된다.
연도의 좌우에는 역사(力士)를, 현실 사면 벽에는 사신(四神)과 장식문양을, 천장에는 각종 천신(天神)과 상서동물·수목·일월성신(日月星辰)을 배치하였다.
현실 벽의 사신 중 남벽의 주작(朱雀)은 노란 부리와 붉은 벼슬을 달았으며, 동편을 향해 날아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꼬리는 한 가닥이며 발 밑에는 연화대(蓮花臺)가 그려져 있다. 북벽의 현무 가운데 뱀과 동서벽의 청룡·백호는 몸체가 모두 오색(五色)이다.
사신의 배경에는 인동문·화염문·연화문으로 채워진 사방연속무늬가 지문(地文)으로 장식되었다. 사방연속무늬는 둥근 부채의 양 밑을 뾰족하게 잡아 뺀 형태이다. 그 내부에는 인동에 싸인 연꽃이 피어오르는 모습, 연화좌 위의 인물, 삼엽연꽃이 허공을 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연화좌 위의 인물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중국의 석굴사원에 보이는 공양인물상과 흡사한 복식과 자세를 하고 있어 당대 불교문화의 활발한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 인물들의 어깨 좌우로 더듬이 같은 선이 뻗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현실 벽이 잇닿은 부분에는 괴면(怪面)의 괴수(怪獸)와 2마리의 교룡(交龍)이 천장을 떠받는 형세로 장식되었다. 천장부 1층과 잇닿은 벽 상단부에는 위아래 연속능형문 사이로 2마리의 용이 얽혀 한 단위를 이루며 이어지는 교룡문으로 장식되었다.
1층에는 일월신·비천(飛天)·제륜신(製輪神)·수목이 배치되었다. 2층에는 일월성신과 각종 주악천인(奏樂天人)과 비천이 그려졌다. 천장석 중앙에는 1마리의 꿈틀거리는 황룡(黃龍)을 그렸다.
통구 4호분의 벽화는 내용구성방식 및 채색기법이 통구 5호분 벽화와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현실벽의 지문 가운데 나타나는 인물상이나 천장석의 황룡은 통구 5호분과는 다르다. 전체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 석굴사원양식의 영향을 반영하는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이 고분은 중국 남북조시대 불교문화의 영향을 고구려화하던 6세기 후반 고구려 통구지방의 문화적 흐름을 잘 보여주는 벽화고분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