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부장용(副葬用)이거나 어떤 의식, 특히 장의예식(葬儀禮式)에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유물들을 통해 당시의 가옥형태를 알아볼 수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집토기는 출토지가 확실하지 않으나 가야 지방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사다리가 있어서 마룻바닥이 높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인데 경사가 비교적 가파르나 소복한 느낌을 주어서 이엉을 얹은 초가지붕을 연상시킨다. 지붕 한쪽에는 굴뚝을 본뜬 둥근 기둥이 솟아 있고 지붕 꼭대기에는 작은 동물이 지나가는 모습으로 붙어 있다.
호암미술관 소장의 집토기도 바닥이 높은 건물이다. 가파른 지붕이 길게 아래로 처지고 지붕에는 아래쪽으로 띠를 두르고 둥근 못 같은 것으로 꼭꼭 누른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지붕 한쪽에는 역시 굴뚝이 있고 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이것과는 다른 형태의 것으로 바닥은 둥글고 집채는 방형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진 것이 있다. 드물게 큰 것으로 지붕의 기왓골은 굵게 음각하고 지붕 한 가운데에는 굴뚝대신 구멍이 있으며, 벽면에는 출입문과 창살이 그려져 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은 앞의 유물들에 비해 간결한 솜씨로 만들어졌다. 유사한 모양의 토기가 동경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신라토기로 알려져 있다.
보다 시대가 내려오는 통일신라의 유물 중에도 뼈단지〔骨壺〕의 외함(外凾)으로 쓰인 집토기가 있다. 경주시 보문동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팔작지붕으로 옆벽 쪽으로 문이 표현되고, 문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문을 끼웠던 꼭지는 네 귀퉁이에 남아 있다. 지붕에는 기왓골이 정연하고 치미(鴟尾)가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지붕의 합각(合角) 부분과 벽면에는 인화문(印花文)이 있고, 벽의 아랫면에는 융기문(隆起文)으로 축대를 표현하였다. 뼈단지가 그 안에 놓이면 저 세상에서의 평안한 집을 뜻한다고 하겠다.
한편, 일본의 하니와(埴輪)에 보이는 집토기 중에는 봉분의 맨꼭대기에 놓여서 사당의 구실을 한 것도 있다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예는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에서도 한대(漢代)의 토용 중에 죽은 이의 장례에 쓰인 건물이 보인다. 특히, 이 가옥형태는 공상적 요소가 가미되어 신선사상 등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동양에서의 집토기는 죽음 저쪽의 세계에서도 이 세상에서와 같은 안식이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며, 아울러 뛰어난 조형감각을 보이고 있다.
집토기가 모두 가옥형이라고 하지만 주택을 본뜬 것과 창고 같은 건물을 본뜬 것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보문동 출토의 집토기는 죽은 이의 안식처라는 의미가 강하게 풍긴다.
여기에 비해 삼국시대의 집토기는 사다리가 있는 고상건물로 쥐나 다른 동물의 접근을 막는 창고로 보인다. 이것은 죽은 이의 장의절차에 저 세상에서의 평안과 함께 곡식이 담긴 창고건물을 부장해 저 세상에서의 풍요를 빌어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