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헌부 관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도 다시청(茶時廳)에 모여 차를 마시는 풍속이 있었다. 이와 같은 풍속으로 보아 관사에서 다사(茶事)를 맡은 다모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음다풍속의 쇠퇴에 기인함인지 아니면 비슷한 발음 때문인지 다모는 음식 등의 잡일을 하는 찬모와 혼용되게 쓰였으며, 단순한 관비로 변해버렸다.
한편, 개화기 이후 궁중에서 풀려나온 궁녀들이 차마시는 풍습을 항간에 전파시켜 차를 대접하는 풍습이 생겨나기도 하였고, 점차 차를 파는 찻집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예전의 서울 모전다리 찻집에서는 겨드랑이의 살이 보이는 짧은 저고리를 입은 다모들이 손님을 유인하여 작설차를 팔았기에 ‘모전다리 다모의 겨드랑이’라는 속담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또한, 쌍계사 입구에는 모녀가 작설차를 파는 찻집이 있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