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집 8권, 속집 2권, 부록 2권 합 6책. 영인본. 원집은 1948년 문인들이 편집, 간행하였고, 속집과 부록은 1973년 문인들이 편집해 원집과 함께 영인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김병수(金丙秀)·김영주(金永柱)·이진락(李晋洛) 등의 발문이 있다. 한림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원집 권1∼3에 서(書) 131편, 권4에 잡저 9편, 권5·6에 서(序) 17편, 기(記) 25편, 발(跋) 9편, 잠(箴) 1편, 명(銘) 3편, 상량문 4편, 제문 19편, 애사 4편, 권7·8에 비(碑) 5편, 묘지명 2편, 묘표 9편, 묘갈명 25편, 유사 1편, 전(傳) 6편, 습유(拾遺)로 서(書) 17편, 속집 권1·2에 시 8편, 서(書) 103편, 잡저 8편, 서(序) 5편, 기 5편, 발·찬(贊)·송(頌)·고문(告文) 각 1편, 제문 7편, 묘표 3편, 묘갈명 2편, 부록 권1·2에 만장(輓章)·제문·행장·가전(家傳)·묘지명·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원집의 서(書)는 독서·학문·세변(世變)·문장에 관한 논변(論辨)이 대부분이다. 「여변곡명(與卞穀明)」은 당대의 대문장가였던 변영만(卞榮晩)에게 보낸 편지다.
그의 문장이 훌륭함을 찬양하는 한편, 그가 “주자(朱子)의 학문으로 말미암아 동방의 백성에게 화를 끼쳤다.”고 말한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내용이다. 저자는 글을 지음에 있어서는 기(氣)가 주(主)이고 식견이 보(輔)가 되기 때문에, 기가 마르면 식견이 아무리 풍부해도 훌륭한 문장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잡저 가운데 「김이회근사록사차강변(金而晦近思錄私箚講辨)」은 김황(金榥)·권상경(權相經)의 『근사록』에 대한 차의(箚疑)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조목별로 논변, 강토한 내용이다. 김황이 ‘근사(近思)’란 행동을 지식보다 중시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그는 지식이 행동에 앞서 중요하다고 논변하였다.
또한, 「원양(原讓)」은 ‘사양함〔讓〕’의 아름다운 덕(德)을 강조한 내용이다. 사양하는 마음만 있으면 천하의 선치(善治)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글은 대개 문장론과 관련된 것이 많다. 실제로 그 자신이 훌륭한 문장가였던 점에서 볼 때 근대 문학 사조를 연구하는 데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