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준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교서관 소속의 잡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교서관 소속의 잡직.
내용

본래 사준(司準)으로 불렸으나 영조 때에 창준으로 개칭되었다. 인원은 14인으로 생도 중에서 선발하여 충당하였다. 주된 업무는 서책 간행이었다.

서책 간행 후 책에서 발견되는 착오에 따라 감인관(監印官 : 교서관 소속)으로부터 상벌을 받았는데, 착오가 없으면 별사(別仕 : 元仕 이외에 특별히 근무한 일수)를 받고, 매권당 3자 이상의 오자가 있으면 근무일수를 삭제당하였다.

한 때는 인원이 30여인으로 늘어나 일에 비하여 인원이 많고 쓸데없이 국고만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인원이 4인으로 줄었다. 규장각에서는 감서(監書)가 창준과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증보문헌비고』
『육전조례』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