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주사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궁궐 안에 창건한 사찰.
이칭
  • 이칭내불당(內佛堂), 내원(內院), 내전(內殿), 내제석궁(內帝釋宮)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상현 (한국교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궁궐 안에 창건한 사찰.

내용

소지왕 때부터 있었던 사찰이다.『삼국유사』의 천사옥대조(天賜玉帶條)에는 진평왕이 창건하였다고 했지만, 사금갑조(射琴匣條)에는 소지왕 때 이미 궁궐 내에 이 절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절터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 절은 내전(內殿)·내원(內院)·내불당(內佛堂)·내제석궁(內帝釋宮) 등으로도 불렸다.

486년(소지왕 10) 천주사의 분수승[焚修僧:부처님께 향을 올려 기도해주는 승려]이 거문고갑 속에서 비빈(妃嬪)과 간통하다가 소지왕이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되었고, 이 때문에 국내의 모든 승려들이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변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불교 공인 이전에 불교가 신라 사회에 유포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신장이 11척이나 되는 진평왕이 천주사에 행차하여 돌계단을 밟으니 돌 세 개가 한꺼번에 부서졌는데, 왕이 이 돌을 옮기지 말고 뒷사람에게 보이라고 하였다. 이 돌은 신라시대 성중(城中)의 오부동석(五不動石) 중의 하나였다. 그 밖에도 경덕왕이 승려 월명(月明)에게 차와 수정염주를 하사할 때 갑자기 한 동자가 나타나서 이것을 받아 내원(內院)의 탑 속으로 숨어 버렸고, 차와 염주는 남쪽 벽에 그려진 미륵상(彌勒像) 앞에 놓여 있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이 설화에 의하면 천주사에는 목탑(木塔)과 미륵상을 그린 벽화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창 및 폐사 연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천주사는 지금의 제석궁(帝釋宮)인데, 사람들이 해마다 뜰에 꽃을 심고 복을 빈다고 한 『동경잡기(東京雜記)』의 기록을 통하여, 『동경잡기(東京雜記)』가 편찬된 17세기까지는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 『동경잡기(東京雜記)』

  • - 『운주산안국사사적(雲住山安國寺事蹟)』

  • - 『신라의 전설집』(윤경렬, 경주시, 1980)

  • - 『신라의 폐사』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