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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박태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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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박태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1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4권 2책. 필사본. 1811년(순조 11) 현손 종긍(宗兢)이 편집, 간행하였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족손 종정(宗正)의 발문이 있다. 앞에 연보가 있고, 권1·2에 부(賦) 1편, 시 14수, 소(疏) 8편, 계(啓) 9편, 기(記) 1편, 교서 1편, 표전(表箋) 2편, 권3·4에 부록으로 공사습유(公私拾遺) 3편, 서(書) 2편, 시 5수, 제문 1편, 묘지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사직소(辭職疏)가 대부분이다. 「사수찬겸진칠조소(辭修撰兼陳七條疏)」는 수찬의 직을 사임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밝힌 것으로, 먼저 국가의 세력을 인체에 비유하여, 병이란 처음 걸릴 때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의원을 잘못 만나 치료를 소홀히 하거나 오진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된다고 설명하면서, 시급한 용무로 유언비어를 막을 것, 학문을 권장할 것, 상벌을 밝힐 것 등 7개 조항을 들어 선정의 기본을 진언하였다.

계는 모두 피혐계(避嫌啓)로, 이 중 「지평피혐계(持平避嫌啓)」에서는 오시수(吳始壽)는 사형에 처하여야 되는 중범으로서 사형을 감하고 안치(安置)의 명령을 내린 것도 부당한 일인데, 명백한 죄상을 재심하라는 전교는 부당하므로 그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줄 것을 청하였다.

기의 「진해루기(鎭海樓記)」는 해안경비의 요충지인 진해에 망루를 세워 적선을 감시하게 한 것은 잘한 일이라 하고, 그 창루(創樓)의 연혁과 접경, 누의 용도와 주위의 경관 등을 설명한 글이다.

이 밖에 『경국대전』의 완성을 경하한 「본조군신하경국대전성전(本朝羣臣賀經國大典成箋)」과, 저자의 일생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공사습유(公私拾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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