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

교통
제도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정의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개설

고려시대 개경(開京)에 있던 청교역(靑郊驛)에서 남경(南京) 방면으로 향하던 역로망이다.

내용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청교도(靑郊道)는 15개의 역을 관할하는데, 청교(靑郊)[개성(開城,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통파(通波)[임진(臨津, 경기도 파주시)], 마산(馬山)[봉성(峯城, 경기도 파주시)], 벽지(碧池)[고봉(高峯, 경기도 고양시)], 영서(迎曙)[남경(南京, 서울특별시)], 평리(平理)[덕수(德水, 황해북도 개풍군)], 상림(橡林)·단조(丹棗)[적성(積城, 경기도 파주시)], 청파(淸波)[남경], 노원(蘆原)[남경], 행주역(幸州驛)[행주(幸州, 경기도 고양시)], 종승(從繩)[수안(守安, 경기도 김포시)], 금륜(金輪)[수주(樹州, 경기도 부천시)], 중림(重林)[인주(仁州, 인천광역시)], 녹양(綠楊)[견주(見州, 경기도 양주시)]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행주역이 종승역과 함께 수안현(守安縣)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행주에 위치한 것으로 수정하였다.

청교도라는 역도 명칭이 『고려사』 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청교역의 역명에서 유래하였던 만큼, 청교역은 이 역도가 관할하는 15개의 역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청교역은 중앙에서 지방 고을로 보내는 공첩(公貼)을 각지로 전송하는 책임을 지는 역참시설로, 공문서 전달체계의 시발점에 해당하여 고려시대 역 시설 중 으뜸이면서 개경을 중심으로 편성된 전국적인 X자형의 간선 교통로의 중심에 해당한다.

이러한 청교역에서 시작한 청교도는 임진강을 건너 개경 이남(以南) 지역으로 향하였다. 이러한 분포 양상은 소속의 15개 역 중 5개 역이 개성부 관내에 위치하고, 나머지 10개 역이 남경 관내의 역임을 통해 확인된다.

개경과 남경 사이를 연결하는 청교도는 임진강을 건너는 임진도(臨津渡) 경로와 장단도(長湍渡) 경로의 두 교통로로 구성되었다. 임진나루 길은 개성의 청교역에서 출발하여 임진도에서 임진강을 건넌 다음, 청교도 통파역-마산역-벽지역-영서역-청파역의 경로이고, 장단나루 길의 경우는 청교역에서 출발하여 도원도(桃源渡)의 도원역(桃源驛)을 거쳐 장단도에서 임진강을 도하(渡河)한 뒤에 청교도 단조역-상림역-녹양역-노원역의 경로로 이루어졌다.

또한 개경에서 정남쪽의 청교도 덕수역을 경유하여 조강도(祖江渡)에서 조강(祖江)을 건넌 뒤, 안남도호부 수주(樹州)와 인주 방면으로 뻗어 있는 종승역-금륜역·금륜역의 청교도의 역로를 통해 남경으로도 연결 가능하였다. 이처럼 개경과 남경 사이를 가로 지르는 임진강 물줄기 때문에 나루시설도 청교도의 구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교도는 지방으로의 공문서 전달의 시발역이면서 개경 이남으로 나아가는 역도의 출발 역인 청교역에서 유래한 만큼 전국적인 전체 역도망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작지 않았다. 이러한 청교도의 관할 영역을 임진강이 가로 질러 흘렸기 때문에 임진도·장단도·조강도 등의 나루시설이 역도망의 구성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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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의 발달과 남경」(정요근, 『서울 2천년사 9-고려시대 사회 경제와 남경』,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4)
「고려·조선초의 역로망과 역제 연구」(정요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고려중·후기 ‘임진도로’의 부상과 그 영향」(정요근, 『역사와현실』59, 2006)
「7∼11세기 경기도 북부지역에서의 간선교통로 변천과 ‘장단도로’」(정요근, 『한국사연구』1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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