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니코리스크에서 3월 31일에 창간되었으며, 연해주(沿海州)를 비롯한 러시아 일대의 한인 동포들이 주간지로 발행하였다.
그러나 자금사정 등으로 제대로 나오지 못하다가 같은 해 6월 2일에 러시아 각지의 한인대표 76명이 모여 독립민족으로서 자치를 꾀함과 동시에 한족대표회를 조직할 것과 신문을 발행할 것 등을 결의하여, 이때부터 이 신문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한편, 편집진용도 강화하여 박은식(朴殷植)·조완구(趙琬九)·윤해(尹海)·남공선(南公善) 등이 이 신문의 논설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한족공보(韓族公報)』로 개제하여 발행하다가 1919년 말경 폐간되고 말았다.
그 당시 하와이에서 발행되고 있던 『신한민보』에 “『청구신보』가 창간되었으니 구독하라.”는 광고를 게재할 정도로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