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년(세종 16)에 처음 설치되었으나 정원은 규정되지 않았다가, 1466년(세조 12) 관제경정(官制更定)에 따라 훈도 2인을 두게 되었으며, 이것이『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원래의 명칭은 여진학훈도이었으나 여진족이 청나라를 건국함에 따라 1667년(현종 8) 청학훈도로 개칭되었다.
중앙의 사역원에 소속된 20인의 청학생도 외에 의주·창성·북청·초산·벽당·위원·만포 등 7개 고을에도 각기 5∼10인 정도의 청학생도가 있었으나 대개 향통사(鄕通事)가 가르침을 담당하였던 것 같고, 청학훈도의 직과(職窠 : 관직의 빈자리)를 정식으로 인정받은 곳은 의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