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화약의 폭발력이나 압축공기의 팽창력, 또는 용수철의 탄성 등을 이용하여 발사물, 즉 총알이나 작은 화살 등을 한 개 혹은 여러 개 한꺼번에 발사하는 도구이다.
우리나라에서 총을 처음 제조한 시기는 고려 말엽인 1377년(우왕 3)경으로,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화약무기 연구와 제작을 맡은 화통도감(火熥都監)이 설립되면서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화약의 제조법은 최고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화약기술자로부터 많은 어려움 끝에 중요한 기술을 배워 화약제조에도 성공하였다.
그 뒤 조선 초기까지 최무선과 그의 아들 해산(海山)이 대를 이어 우리나라의 화약무기를 발전시켰으나, 중국의 총을 모방하여 만든 당시의 총은 성능이 좋지 못하였다. 1447년(세종 29)에 이르러 세종의 지시에 의하여 대개혁을 이룩함으로써 우수하고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화약무기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경희고소총통(慶熙古小銃筒)은 세종의 화기(火器) 대개혁 전에 사용되었던 총으로 현재 경희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부구조는 14세기 초에 사용되고 1861년 스웨덴의 로슐트(Loshult)에서 발굴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총과 같으며, 겉모양은 1372∼1379년에 중국에서 만든 소형총과 같다. 총구에서 속으로 들어갈수록 내경(內徑)이 좁아지다가 화약을 넣는 약통에서 다시 넓어지고 둥근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총은 한 번에 화살을 한 개씩만 쏠 수 있고 성능이 좋지 않다. 세종 때의 화약무기 대개혁은 이러한 나쁜 점, 즉 성능이 좋지 않고 한 번에 한 발 이상은 쏠 수 없는 점을 개량한 것으로, 세종의 대개혁 이후의 화약무기 체계를 보면 포(砲) 4종, 총 7종, 로켓 무기 4종, 폭탄 7종, 화차 2종 등이었다.
세종의 화약무기 대개혁은 총의 내부구조에 격목통(激木筒)을 만들고 격목을 끼워서 사용하는 방식인데, 이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독창적인 것으로서 개혁 전의 총에 비하여 사정거리가 2, 3배 늘어났고, 한 번에 최고 12발까지 화살을 넣고 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세종 때 개혁된 총의 구조는 총의 앞부터 취(觜), 격목통, 약통(藥筒), 모병(冒柄)으로 구성되어 있다. 취(부리, 주둥이)는 발사물, 즉 길이 22∼29㎝의 작은 화살(세전, 차세전, 세장전, 차세장전)을 넣는 곳으로 사전총통(四箭銃筒)은 세전 4발이나 차세전 6발, 팔전총통(八箭銃筒)은 세전 8발이나 차세전 12발을 끼울 수 있는 것이다.
격목통에는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철추(鐵鎚 : 쇠몽둥이)로 박는데, 이는 약통 속에 넣은 화약의 폭발력을 강하게 하면서 여러 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약통은 화약을 넣는 곳인데 중간쯤에는 약통 속의 화약에 불을 붙여 주는 점화선(화약선)을 끼울 약선혈(藥線穴)이 있다. 약통 뒷부분은 막혀 있으며, 그 뒤에 모병, 즉 손잡이용 나무자루를 끼운다. 손잡이용 나무자루는 총을 쏠 때 잡기 위한 것이다.
총의 발사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총의 속을 청소한다. ② 약통에 점화선을 끼운다. ③ 약통에 화약을 넣는다. ④ 철추로 격목을 격목통에 박는다. ⑤ 취에 화살을 끼운다. ⑥ 총을 목표물에 조준한다. ⑦ 약선에 불을 붙인다. ⑧ 약통 속의 화약에 불이 붙은 뒤 화약이 폭발하며 화살이 격목과 같이 앞으로 발사된다.
당시 총의 종류는 이총통(二銃筒)·삼총통·팔전총통·사전총통·사전장총통(四箭長銃筒)·신제총통(新製銃筒)·세총통(細銃筒) 등 7종류가 있었다. 세총통의 길이는 14㎝로, 손잡이용 나무를 박을 수 없기 때문에 철흠자(鐵鎚子)라는 쇠집게로 총을 집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지금의 권총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격목형총(激木形銃)은 1579년(선조 11) 승자총통(勝字銃筒)을 만들면서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격목형총의 생명은 격목통에 잘 맞는 격목을 만드는 것인데, 당시의 총 제작기술로 볼 때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발사 때의 준비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승자총통은 격목 대신 진흙으로 화약과 발사물(箭이나 丸)도 사용할 수 있고 성공률도 격목형총보다 높았다. 청동을 주조하여 만든 승자총통의 내부구조는 총의 입구에서부터 화약을 넣는 약통까지 내경이 같은 형태이다.
승자총통의 종류에는 승자총통·차승자총통(次勝字銃筒)·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별승자총통(別勝字銃筒) 등이 있었다.
차승자총통은 그 동안 일반적으로 총의 뒤쪽에 붙였던 손잡이용 나무 대신 지금의 현대식 총과 같이 개머리판을 달았고, 가늠자와 가늠쇠가 부착된 최초의 총이었다.
임진왜란 직전에는 승자총통 이외에 우자(宇字)·주자(宙字)·홍자(洪字)·황자(荒字)·일자(日字)·월자(月字)·영자(盈字)·측자(昃字) 총통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세종의 대개혁 때 제작된 이총통·삼총통·팔전총통·사전총통·사전장총통·세총통·신제총통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세종 때 제작해 놓은 총에다 음각으로 새 이름을 새겨 놓았다.
이들 총들은 때에 따라 전(箭)이나 환(丸) 모두를 쏠 수 있었다. 아마도 토격(土激)으로 환을 사용하면서 구형총에 새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임진왜란을 거치는 동안 일본의 조총이 우리의 승자총통보다 성능이 좋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 소승자총통은 총신이 길게 늘어났으며, 조총과 같이 점화장치를 실에 불을 붙여 방아쇠를 당기면 탄력에 의하여 불이 붙은 실이 총의 약통 옆에 붙어 있는 곳에 떨어져 약통 속의 화약에 불을 붙여 줄 수 있도록 개량된 화승총으로 발전되어 조선 말기에는 독립군의 주요 무기로 광복 전까지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일본군이 사용하던 38식·99식 소총이 사용되다가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하여 미군의 M-1과 카빈소총들이 사용되었다.
현대의 총은 모두 탄창을 자동장전하여 발사하며, 크게 반자동식단발·완전자동식3발점사·완전자동식연속사격의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그리고 점차 완전자동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965년 국군이 월남에 파병되면서 미군으로부터 최신형 M-16이 지급되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에 들어와서 M-16을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발전시킨 K-1·K-2가 개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