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헌(公獻). 호는 이우정(二友亭) 또는 운엄(雲广). 선산 출신. 최체건(崔體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두추(崔斗樞)이고, 아버지는 최수인(崔壽仁)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5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762년 자신이 직접 학문을 가르친 왕세자(王世子: 思悼世子, 뒤에 莊祖로 추존)가 궤 속에 갇혀 굶어 죽는 참극을 당하자 깊은 충격을 받고 무언의 항변으로 인륜을 개탄하며 관직에서 떠났다.
1766년 다시 사헌부지평을 제수받고 벼슬길에 나와 1769년 장령(掌令)으로 승진한 뒤 1782년(정조 6) 돈녕부도정에 발탁되었으니 삼사소속 관원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뒤 병조참판을 거쳐 사직한 뒤 학문으로 여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