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대대로 성환(成歡) 역리를 지냈으며 그 역시 칠순의 고령에 이르기까지 같은 직에 있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 3,000명의 난군이 성환에 쳐들어오자 역승(驛丞) 강백(姜柏)이 도망하고 온 고을 주민들도 난을 피해갔으나, 70여 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역졸과 함께 끝까지 역관(驛館)을 지켰다.
이 때 이인좌를 계획적으로 잘 대접, 술에 취하여 떨어지게 한 다음 밤중에 역졸을 시켜 뒷산에 올라가 외치게 하되, 수많은 군사가 적도(賊徒)를 토벌하기 위하여 진격해오는 것처럼 꾸미는 한편 갑자기 말을 풀어놓아 좌우 충돌하게 함으로써 일대를 교란시켰다.
이에 놀란 난군(亂軍)은 그 태반이 흩어져 달아났고, 이인좌 역시 황급히 회군하였으나 군세(軍勢)를 떨치지 못한 채 마침내 관군에게 잡혀 반란이 진압되었다. 그가 죽은 뒤 이름은 널리 전해지지 않았지만 성환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최충신(崔忠臣)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