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최명길 묘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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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최명길 묘소
최명길 묘소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최명길의 무덤.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청주 최명길 묘소(淸原 崔鳴吉 墓所)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기념물(1984년 12월 31일 지정)
소재지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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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최명길의 무덤.
개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위치한다. 1984년 12월 3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전주최씨 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내용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윤근수(尹根壽), 이항복(李恒福), 신흠(申欽) 등 여러 문인들에게 수학하였다.

1605년(선조 38) 문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때에 육조의 좌랑을 거치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적극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이후 정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대표적 주화론자(主和論者)로 활약하였고, 요직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묘역(墓域)은 약 200평의 평지에 조성되었다. 3기의 봉분이 품(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중앙 봉분이 최명길의 것이며, 좌측이 첫 번째 부인 인동장씨, 우측이 두 번째 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의 봉분이다.

최명길의 봉분은 주위에 높이 50㎝의 호석(護石)을 둘렀으나, 인동장씨와 양천허씨의 봉분에는 호석이 없다. 세 봉분 중앙에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있고, 주위에 문인석 · 망주석이 있다.

묘표의 각자(刻字)는 남구만(南九萬)이 썼는데, 큰 글씨로 ‘조선상국 증시문충지천최공명길지묘(朝鮮相國贈諡文忠遲川崔公鳴吉之墓)’라고 되어 있고 왼쪽에 작은 글씨로 ‘영의정 의령남구만서(領議政宜寧南九萬書)’라고 되어 있다.

묘소 입구에 신도비가 있는데, 비신(碑身)의 높이 270㎝ · 폭 37㎝ · 전체높이 410㎝의 대형비석이다. 이 비석은 묘소와는 별도로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에 보호각이 세워졌다.

참고문헌

『인물지』(충청북도, 1987)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국가유산청(www.khs.go.kr)
관련 미디어 (5)
집필자
전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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