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투기(妬忌)에 분노하여 스스로 거세(去勢)하였다. 환관 도성기(陶成器)와의 인연으로 왕궁에 들어갔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도성기와 함께 장군에 올랐다. 최세연은 임금 앞에서 서슴없이 직언하기도 하였지만, 형 최세안(崔世安)을 서반(西班: 무반)의 요직인 중군도령(中軍都領)에 초수(超授: 벼슬의 등급을 뛰어 올려 제수하는 일)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또한 조인규(趙仁規)의 집을 사서 확장·수리할 때 누각(樓閣)이 대궐에서 매우 가까워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의 제지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다가 순마소(巡馬所)에 갇히기도 하였다. 충선왕(忠宣王) 재위시절인 1297년에 제국대장공주가 죽었는데, 당시의 죽음이 궁인(宮人) 무비(無比)의 저주와 관련된 것이라 하여 그 일당들이 화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최세연도 무비의 당이라 하여 도성기와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