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남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해서어영총관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영중(英仲)
  • 추봉(秋峯)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673년(현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해서어영총관
  • 출생 연도1595년(선조 28)
  • 출생지경주(慶州)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호기 (성균관대학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추봉실기 / 최신남 미디어 정보

추봉실기 / 최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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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해서어영총관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영중(英仲). 호는 추봉(秋峯). 경주 출신.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최운익(崔雲翼)이며, 어머니는 월성박씨(月城朴氏)로 박영찬(朴永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병학(兵學)에 밝아 1624년(인조 2) 아우 최구남(崔龜楠)·최두남(崔斗楠)·최기남(崔起楠)과 종제 최지남(崔智楠)·최태남(崔泰楠)·최사박(崔嗣朴)·최장남(崔壯楠)과 함께 무예로써 등용되었다.

병자호란 때 해서어영총관(海西御營摠管)으로서 사과 최구남, 중군 최두남, 별장 최기남, 별장 최지남, 호군 최태남, 도호사 최사박, 사과 최장남과 함께 안주·황주·봉산·중화·토산 등지에서 오랑캐를 격파하고 큰 공을 세웠다. 적이 남한산(南漢山)으로 침입하자 군사를 이끌고 용진(龍津)에 이르렀으나 강화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였다.

이 때 최두남·최기남·최지남이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자 이들의 시체를 거두어 귀가하였다. 1644년 최사박이 병자호란 때 실책이 있었다는 무고로 투옥되자 당시의 사실을 상소로 밝히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추봉실기』가 있다.

참고문헌

  • - 『추봉실기(秋峯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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