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남 ()

추봉실기 / 최신남
추봉실기 / 최신남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해서어영총관을 역임한 무신.
이칭
영중(英仲)
추봉(秋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5년(선조 28)
사망 연도
1673년(현종 14)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경주(慶州)
주요 관직
해서어영총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해서어영총관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영중(英仲). 호는 추봉(秋峯). 경주 출신.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최운익(崔雲翼)이며, 어머니는 월성박씨(月城朴氏)로 박영찬(朴永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병학(兵學)에 밝아 1624년(인조 2) 아우 최구남(崔龜楠)·최두남(崔斗楠)·최기남(崔起楠)과 종제 최지남(崔智楠)·최태남(崔泰楠)·최사박(崔嗣朴)·최장남(崔壯楠)과 함께 무예로써 등용되었다.

병자호란 때 해서어영총관(海西御營摠管)으로서 사과 최구남, 중군 최두남, 별장 최기남, 별장 최지남, 호군 최태남, 도호사 최사박, 사과 최장남과 함께 안주·황주·봉산·중화·토산 등지에서 오랑캐를 격파하고 큰 공을 세웠다. 적이 남한산(南漢山)으로 침입하자 군사를 이끌고 용진(龍津)에 이르렀으나 강화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였다.

이 때 최두남·최기남·최지남이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자 이들의 시체를 거두어 귀가하였다. 1644년 최사박이 병자호란 때 실책이 있었다는 무고로 투옥되자 당시의 사실을 상소로 밝히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추봉실기』가 있다.

참고문헌

『추봉실기(秋峯實記)』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