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좌승지, 형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우도추쇄어사(忠淸右道推刷御史)가 되어 당시 노비 등이 주인을 배반하고 내수사(內需司)에 소속되어 있던 것을 모두 추쇄하여 본 주인에게 돌려줌으로써 노비와 주인간의 분규를 거국적으로 해결하여 명성이 높았다.
이듬해 경성판관을 지냈고, 1659년 한산군수를 거쳐 1660년(현종 1) 장성부사가 되어서는 기민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
1665년 헌납으로 춘추관기주관이 되어 『효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다음해에는 각 관청의 물품출납을 서리(胥吏)에게만 맡기기 때문에 미포(米布)에 대한 농간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책임자의 입회 하에 출납을 엄중히 해서 그 농간을 바로잡을 것을 진언하여 그대로 시행하게 하였다.
그 뒤 장령·집의 등을 거쳐 1672년 호조참의, 1677년(숙종 3) 좌승지·형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뒤에 병조·호조의 참판을 지냈다. 일찍이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숙종을 시강할 때, 숙종은 그의 청빈함을 가상히 여겨 초모(貂帽)를 하사한 바 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서계집(西溪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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