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용남. 전라남도 목포(木浦) 출생. 목포상업학교를 중퇴하고 전문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 이후 향리에서 문학서클 활동을 하면서 습작에 전념하다가 상경하여 국도신문사·조선일보사·서울신문사 등에서 기자 활동을 하였다.
1954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 서울신문 문화부 차장·기획위원·심의위원(1954∼1973) 등을 역임하였고, 그 뒤 문화예술진흥원 연구실에 전문위원으로 종사하기도 하였다. 1980년 이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1980∼1984)을 역임하였고, 타계하기까지 예술평론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현대문학과 민족의식」이 당선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현대시의 순수감각 비판」(1956)·「비평의 문학성과 현대성」(1956)·「모더니즘 백서(白書)」(1959)·「반항적 문학」(1961) 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그는 객관적인 역사의식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비판정신을 창작의지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는 문학관을 피력하였다. 그의 평론은 견고한 논리적 구조로 하여 강한 설득력을 지니면서, 전후 유행적인 아류의 발생과 감각적인 것의 몰입 등 불건전한 요소가 횡행하던 창작 풍토에 민족문학의 주체성을 일깨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분단된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문학은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과 이를 통한 민족의식의 주체성 확보에 달려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한편, 우리 문학의 전통을 근대화 운동기에 있어서의 평민문학과 독립투쟁기의 저항문학으로 잡고, 현재에 있어서는 분단현실을 올바로 형상화하는 작업 속에서 민족문학이 올바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후에도 「분단의 문학」(1968)·「전통주의와 세계주의」(1969)·「민족문학과 통일」(1972)·「식민지시대의 민족문학」(1981)·「민족문학론」(1981)·「민족문학과 상황의식」(1985) 등의 주목할 만한 평론을 발표했다. 그는 이를 통하여 민족문학의 원론적 모색뿐 아니라 과거 우리 문학의 민족문학적 전통에 대한 탐구, 새로운 민족문학의 모색 등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었다.
평론집 『현실의 문학』(1982)·『민족문학신론(民族文學新論)』(1983)·『분단헐기와 고루살기의 문학』(1993) 등이 있고, 편저로 ‘독립운동총서’ 중 『학예언론투쟁』이 있다. 특히, 「민족문학신론」은 그의 회갑기념 저작으로서 30년 동안 비평 활동을 통해 집요하게 탐구해온 민족문화론이다.
그는 1950년대 전후의 혼란 속에 범람했던 시류적인 아류와 감각적인 것에 몰입하는 창작 풍토에 반발해서 민족문학의 주체성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또한 문학 활동을 하는 한편 영화예술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아 영화평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56년 제12회 현대문학상과 1993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