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달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때, 칠곡군수, 대구판관, 청도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학자.
이칭
  • 만정(晩靜), 일화(一和)
  • 성내(聖鼐)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월성(月城)
  • 사망 연도194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7년(고종 4)
  • 출생지대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호기 (성균관대학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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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칠곡군수, 대구판관, 청도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학자.

개설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성내(聖鼐), 호는 일화(一和) 또는 만정(晩靜). 대구(大邱) 남산리(南山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행가의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行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 최석로(崔錫魯)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 강호문(姜虎文)의 딸이다. 7세에 능히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4(고종 31) 주사(主事)가 되었고, 이어 경상남도 시찰사(視察使)가 되어 간리(奸吏)들을 탄핵하는데 공평하게 하였다. 1905년 제실회계심사관(帝室會計審査官)으로 재직하다가 칠곡군수(漆谷郡守)로 나가 학교를 창설하고, 가난한 집에는 세금을 경감하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래서 그 고을 사람들이 최현달의 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세우려 하자 극력 저지하였다. 1907년 대구판관(大邱判官)이 되었고, 이듬해 청도군수(淸道郡守)로 나갔다. 이 때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보고서 그날로 관직을 버리고 귀가, 자결할 뜻으로 식음을 닷세 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연로한 모친이 계시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저서로는 『일화문집(一和文集)』 5권과 편서인 『시해운주(詩海韻珠)』 4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일화문집(一和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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