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달 ()

유교
인물
대한제국기 때, 칠곡군수, 대구판관, 청도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 학자.
이칭
성내(聖鼐)
일화(一和), 만정(晩靜)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7년(고종 4)
사망 연도
1942년
본관
월성(月城)
출생지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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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칠곡군수, 대구판관, 청도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 학자.
개설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성내(聖鼐), 호는 일화(一和) 또는 만정(晩靜). 대구(大邱) 남산리(南山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행가의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行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 최석로(崔錫魯)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 강호문(姜虎文)의 딸이다. 7세에 능히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4(고종 31) 주사(主事)가 되었고, 이어 경상남도 시찰사(視察使)가 되어 간리(奸吏)들을 탄핵하는데 공평하게 하였다. 1905년 제실회계심사관(帝室會計審査官)으로 재직하다가 칠곡군수(漆谷郡守)로 나가 학교를 창설하고, 가난한 집에는 세금을 경감하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래서 그 고을 사람들이 최현달의 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세우려 하자 극력 저지하였다. 1907년 대구판관(大邱判官)이 되었고, 이듬해 청도군수(淸道郡守)로 나갔다. 이 때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보고서 그날로 관직을 버리고 귀가, 자결할 뜻으로 식음을 닷세 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연로한 모친이 계시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저서로는 『일화문집(一和文集)』 5권과 편서인 『시해운주(詩海韻珠)』 4권이 있다.

참고문헌

『일화문집(一和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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