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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황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4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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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황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4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684년(숙종 10) 황신의 외증손 이사명(李師命)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석주(金錫胄)의 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2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시 27수, 소·차 9편, 계사(啓辭) 29편, 의(議) 1편, 서독(書牘) 13편, 교서 2편, 격문·상량문 각 1편, 제문 4편, 잡저 1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동생 황척(黃惕)의 아들로 저자에게 입양된 황일호(黃一皓)의 『지소유고(芝所遺稿)』가 첨부되어 있다. 황일호는 병자호란 때 독전어사(督戰御史)로 남한산성의 수비에 공을 세웠다.

「간원진언차(諫院陳言箚)」는 1601년(선조 34) 대사간에 재임하던 중 왜란 후의 어지러운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진언한 내용으로, 정치·경제·국방·교육 등에 걸쳐 폭넓게 언급하였다. 정유재란 중에 올린 「청토대마도소(請討對馬島疏)」는 대마도의 정벌을 청원하면서 자신이 명나라 사신을 따라 일본에 내왕하면서 파악한 대마도의 규모·정황 등을 상세하게 언급하였다.

1598년 호조참판으로 재임하면서 올린 「지부헌언계(地部獻言啓)」에는 전제(田制)·공안(貢案)을 비롯한 여섯 조항의 별단(別單)이 첨부되어 있는데, 전란 후의 재정 실정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이다. 1596년 저자가 통신사로 일본에 내왕한 후 1597년 재침해 오기 직전의 일본 정세를 보고한 「통신회환후서계(通信回還後書啓)」와 1601년 일본이 제시해 온 화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왜노강화의(倭奴講和議)」를 비롯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서 적진에 다녀온 뒤 임금에게 적의 동태를 보고한 것으로 잡저에 수록된 「등대설화(登對說話)」 제1편 등은 「왕세자재성천친림호군위유서(王世子在成川親臨犒軍慰諭書)」·「대가환도후교서(大駕還都後敎書)」·「대호소사황정욱격삼도문(代號召使黃廷彧檄三道文)」·「서해문(誓海文)」 등과 더불어 전란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황일호의 『지소유고』에는 「석화(惜花)」·「한거(閑居)」 등의 서정시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파견된 명나라 장수 정룡(程龍)의 귀국을 전송하면서 지은 「송정총병용환조사(送程摠兵龍還朝辭)」를 비롯하여 「의열사중수기(義烈祠重修記)」·「봉사가도시문답서계(奉使椵島時問答書啓)」 등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봉사가도시문답서계」는 저자가 1638년(인조 16) 의주부윤에 재임하던 중 청나라의 태종이 명나라를 공격하자 병자호란의 상흔을 남긴 청나라에 복수하려는 계획을 임금에게 보고한 것으로, 역시 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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