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역전투

  • 역사
  • 사건
  •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4월에 조경(趙儆)·정기룡(鄭起龍) 등이 경상도추풍역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원래 (순천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4월에 조경(趙儆)·정기룡(鄭起龍) 등이 경상도추풍역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내용

1592년 4월 19일 김해성을 함락시킨 일본군(黑田長政이 이끈 西路軍)은 추풍령을 향하여 북상,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당시 경상우방어사(慶尙右防禦使) 조경과 조방장(助防將) 양사준(梁思俊)이 경상우도지역의 관군을 이끌고 추풍역을 지키고 있었으나, 병력과 화력에 있어서 처음부터 적의 대군을 막아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여 있었다. 이 때 설상가상으로 복병의 기습공격을 받은 관군은 일시에 패퇴하여 방어사 조경까지 일본군의 포로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하여 방어사 휘하에 돌격장으로 있던 정기룡(鄭起龍)은 신장(神將)이라는 그의 별명대로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 깊숙히 뛰어들어 방어사를 구출해내는 동시에 적병 100여명을 사살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그는 방어사 조경이 영남지방에 내려올 때 그 휘하에 종군할 것을 자청하여 돌격장이 된 뒤 거창의 신창전투(新昌戰鬪)에서 이미 많은 적병을 물리쳐 그 무용을 떨친 바 있었다. 그러나 정기룡의 용전에도 불구하고 추풍역전투의 결과는 관군의 패전으로 끝났고, 이로부터 추풍령 동부 경상도지방은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참고문헌

  • - 『난중잡록(亂中雜錄)』

  • -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

  • - 『선묘중흥지(宣廟中興志)』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