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말~문종대의 문신 남지의 묘소로,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위치한다. 1988년 9월 30일에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의령남씨 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남지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자는 지숙(智叔)이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조선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손자이다. 개성유수·호조판서·좌의정 등을 지냈으며, 문종 때에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단종(端宗)의 안위를 부탁받은 고명대신(顧命大臣)의 한 사람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사돈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사위 안우직(安友直) 부자는 죽음을 당했으나, 그는 병이 깊어 화를 면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양천산(凉泉山)에 있다. 독특한 양식의 장방형의 대형 분묘로 봉분 아랫쪽은 높이가 낮은 호석(護石)을 둘렀다. 상석·문인석·장명등·망주석 및 묘비를 세웠는데, 이중 장명등과 망주석은 최근의 것이다.
묘비는 봉분 좌측에 있으며 1732년(영조 8)에 세웠다. 신도비는 묘소 입구에 있는데, 방형 대석 위에 높이 214㎝·폭 82㎝·두께 42㎝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가첨석을 얹었다. 비문은 8대손인 남구만(南九萬)이 지었으며, 1713년(숙종 39)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