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파사이사금 23) 8월 신라에 항복하여 복속되었다. 음즙벌국은 지금의 경주시 안강지역에 있던 소국으로 추정되고 있다. 102년 8월 이웃의 실직곡국(悉直谷國)과 영토분쟁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신라의 파사이사금이 재판하여 결정하여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이를 난처하게 여긴 신라왕이 당시 나이가 많고 지식이 많은 금관국(金官國)의 수로왕을 초빙하여 물었더니, 수로왕이 그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여 재판에서 이겼다.
그러자 파사이사금이 6부(部)에 명하여 수로왕을 향연으로 대접하게 하였는데, 5부는 모두 이찬(伊飡)으로 접빈주를 삼았음에 비하여, 오직 한기부(漢祗部)만이 벼슬이 낮은 자로 하여금 접대하게 하였다. 이에 수로왕이 크게 노하여 노(奴) 탐하리(耽下里)에게 명하여 한기부의 주(主)인 보제(保齊)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 뒤 도망쳐온 탐하리를 집에 있게 해주었다. 파사이사금이 수색을 하려 하자 탐하리의 양도를 거부하다가 신라군의 정벌을 받아, 결국 신하들을 거느리고 항복하고 나라도 복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