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요릿집으로 명월관(明月館)의 분점격이었다.
명월관은 한말에 궁내부 주임관(奏任官) 및 전선사장(典膳司長)으로 있으면서 어선(御膳)과 향연을 맡아 궁중요리를 하던 안순환(安淳煥)이 1909년에 지은 요릿집이다. 명월관은 개점 초기부터 대한제국의 고관과 친일파 인물들이 출입하였으며, 후기에는 문인·언론인들과 국외에서 잠입한 애국지사들의 밀담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18년 명월관이 소실되자 안순환은 순화궁(順和宮: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 194)에 명월관의 분점격인 태화관(太華館)을 차렸다가 뒤에 태화관(泰和館)으로 개명하였다. 이곳은 3·1독립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푼 곳으로 유명하다.
민족의 독립만세운동계획에 따른 준비를 1919년 2월 28일까지 완료한 민족대표 33인 중 29인(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 등 4인은 지방에 있었으므로 불참)은 태화관에 모였는데,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손병희(孫秉熙)는 최린(崔麟)으로 하여금 태화관 주인 안순환이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게 하여 “민족대표 일동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지금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였다.
이에 일본경찰대 80여명이 곧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하였다. 이때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韓龍雲)의 식사를 듣고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일본경찰에 의연하게 연행되었다. 이와 함께 파고다공원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독립의 함성은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