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약사불회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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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약사불회도
양산 통도사 약사불회도
회화
작품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약사전에 있는 불화.
이칭
이칭
통도사약사전후불도|통도사약사전약사설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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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약사전에 있는 불화.
개설

1775년(영조 51) 제작하여 통도사 약사전 후불도로 봉안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크기는 세로 287㎝, 가로 210㎝이다.

내용

화면 중앙에는 수미좌(須彌座)에 결가부좌한 본존이 자리하였다. 그 주위를 일광(日光)·월광(月光)을 비롯한 10보살과 성중(聖衆)이 둘러싸고 있다. 그 밖으로는 사천왕과 12신장이 외호(外護)한 구도이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원형 구도의 군도(群圖) 형식을 이루고 있다.

본존은 원형 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손에는 약호(藥壺)를 지니지 않고 설법의 인상(印相)을 취하고 있다. 높은 육계(肉髻)와 2개의 계주(髻珠) 표현, 가는 눈, 작은 입과 형식적인 수염의 표현 등이 조선 후기 불상 표현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보살들은 갸름한 얼굴, 가는 눈썹, 작은 입 등 모두 같은 모습과 표정으로 변화가 적은 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보살상의 모습은 1777년에 제작된 「용연사영산회상도(龍淵寺靈山會上圖)」(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보살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즉, 가까운 시기, 인접 지역에서 그려진 두 불화의 공통적인 양식적 특색임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보살 주위의 12신장과 사천왕은 다양한 표정과 부릅뜬 눈 등의 표현으로 신장상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화면 하단의 두 천왕의 몸을 휘감은 천의(天衣)의 흐름은 역강한 천왕의 모습을 매우 율동적으로 묘사하여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약사도는 17, 18세기 조선 불화의 불상 모습에서 보여지는 괴량감(塊量感)이나 묵중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윤곽이나 신체의 세부 묘사가 작고 섬약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불의(佛衣)나 천의에 가해진 장식 문양 역시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작고 소박한 종류의 것이다. 이들을 이루는 필선은 비수(肥瘦)의 변화가 없고 날카로운 철선묘(鐵線描)와 같은 기법을 이루고 있다.

색채는 암녹색·암적색이 주조색으로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어둡고 탁한 색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얼굴의 호분(胡粉 : 흰 가루), 본존 광배의 노란색과 각 존상 사이에 가해진 주황색의 주름 표현으로 각각의 모습이 구별되며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8세기 약사불화의 전형적인 도상(圖像)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시대의 불화 양식을 알려 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 통도사 본사편(상)』(성보문화재연구원, 1996)
『한국의 불화』(문명대, 열화당, 1979)
『한국의 미』 16-조선불화-(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통도사의 불화』(통도사, 1989)
「통도사 약사전 「약사불회도」 연구」(김유나,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조선시대 약사불화의 십이신장 도상 연구」(김혜영,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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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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