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에서의 관등은 은솔(恩率)이었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뒤에 옛 백제땅인 우술성(雨述城 :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유민들을 모아 부흥운동을 펴고 있었다. 661년(문무왕 1) 7월에 신라가 고구려를 병합하기 위하여 신라군이 출정하자 길을 가로막고 진격을 못하게 하면서 대항하였다.
그러나 9월 이웃의 옹산성(甕山城 :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鷄足山城)이 신라군에게 함락당하고, 곧이어 신라의 상주총관(上州摠管) 품일(品日), 일모산군(一牟山郡) 태수 대당(大幢)과 사호산군(沙戶山郡) 태수 철천(哲川) 등이 군사를 이끌고 우술성을 공격해와 무리 1,000명이 죽음을 당하자, 달솔(達率) 조복(助服)과 함께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신라에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신라왕으로부터 급찬(級飡)의 관등과 전택(田宅) 및 의물(衣物)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