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무의 탄력성을 이용하여 무거운 돌 등을 성 안으로 던져 공격하는 데 사용한 무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전투에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즉, 신라 태종무열왕 8년(661)에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할 때 포차로 돌을 쏘는데, 날아가는 돌에 성 위의 담과 집이 맞는 대로 무너졌다고 하였다.
포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구조를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포차를 보면 바퀴가 네 개인 수레 위에 나무로 기둥이 네 개인 탑을 세우고 그 위에 가로놓인 축에 긴 장대를 꿰어 장대가 위아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장대의 한쪽 끝에는 줄을 많이 매달아 여러 사람이 잡아당길 수 있도록 하고, 장대의 반대편 끝에는 돌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가죽을 끈으로 연결하였다. 돌을 발사할 때에는 돌을 장대 끝에 달려 있는 가죽 위에 올려놓고 반대쪽 장대 끝에 묶여 있는 끈을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잡아채면 돌이 날아가게 되었다.
초기에 개발된 대형총통(大型銃筒)의 발사물이 둥근돌〔石丸〕이었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포차는 총통이 개발되기 전에 사용되었던 포(砲)의 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