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금성산은 품관산 또는 부용산(芙蓉山)이라고도 한다. 670년(문무왕 10)에 품일(品日)장군이 660년(태종무열왕 7) 백제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아들 관창(官昌)의 명복을 빌고,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뜻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절 이름과 그 뒤 조선 말기까지의 중창 등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1980년에 실시된 단국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하여 신라시대의 기와 조각과 송나라 태종 때의 연호인 ‘太平興國(태평흥국)’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신라와 고려시대에 존재하였던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조선 고종 조 초기에는 영동현감(永同縣監)으로 부임한 김재순(金在舜)이 법당을 세워 중창하였다. 김재순은 부임 첫날부터 3일 동안 계속된 현몽으로 중갱이골 밭 복판에 묻혀 있던 옛 불상을 찾아 봉안하였다는 일화가 전하여진다. 그 뒤 이 불당에서 백일기도하고 영험한 이적을 얻은 황묘덕(黃妙德)이 1927년에 포교당을 세워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나, 1937년에 불상을 도둑맞았다. 1957년에 금성사(錦城寺)로 이름을 바꾸고 중흥불사를 일으켰으며, 1964년에 주지 침허(枕虛)는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고 불상과 5층 석탑을 세워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으며, 절의 이름을 품일과 관창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품관사로 개칭하였다.
대웅전내에는 석가여래좌상과 탱화 6폭, 범종(梵鐘) · 징(鉦) · 극락보탑도(極樂寶塔圖) · 법고(法鼓) 등이 있으나 모두가 최근에 만든 것으로 국가유산의 가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