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목활자본. 1868년(고종 5) 6대손 동규(東奎)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근수(宋近洙)의 서문과 연보가 있고, 권말에 이민덕(李敏德)·동규 등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12수, 소(疏) 6편, 권3에 부록으로 선덕록(先德錄) 1편, 서(書) 5편, 자설(字說) 1편, 잡록(雜錄)·어록(語錄)·육후별기(六侯別記)·황강문답(黃江問答) 각 1편, 만사 5수, 행록(行錄)·사실(事實)·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표충사청개액소(表忠祠請改額疏)」는 조헌(趙憲)의 사절(死節)을 기리기 위하여 옥천(沃川) 군민이 사우(祠宇)를 건립하고 사액(賜額)을 청하여 표충이라는 액호를 하사받았는데, 그 뒤 서원의 형식으로 확장하고 김집(金集)을 배향하게 되니 표충이란 액호가 걸맞지 않으므로 다른 것으로 바꾸어달라고 청하는 글이다. 이 상소문에 의하여 창주서원(滄洲書院)이라는 액호를 하사받았다.
또한 「율곡우암양선생피무변명소(栗谷尤菴兩先生被誣卞明疏)」에서는 윤증(尹拯)이 이이(李珥)는 진실로 입산(入山)한 실수가 있었고 자신의 선조 윤선거(尹宣擧)는 애초부터 죽어야 할 대의(大義)가 없었다고 한 것은, 비록 아버지를 위하여 애써 수식하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아버지를 윤리가 없는 입장에 둔 것이 되어 이이를 무함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를 무함한 것이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이 몇 편의 소들을 통하여 효종 당시 청서파(淸西派)와 공서파(功西派)간의 대립과 북벌문제(北伐問題) 등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