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권 9책. 필사본. 서(序)·발(跋)·부록 등이 없으며, 정리되지 않은 초고본으로 보인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5에 시 861수, 권6에 소(疏) 3편, 서(序) 5편, 기(記) 8편, 권7에 서(書) 3편, 발(跋) 3편, 서후(書後) 7편, 설(說)·축(祝)·명(銘)·사(辭)·논(論) 등 각 1편, 권8에 제문·애사 등 18편, 고문(告文) 5편, 권9∼11에 묘지명 53편, 권12에 묘표 31편, 권13에 묘갈 15편, 권14∼17에 묘비 7편, 행장 13편, 권18에 시장(諡狀) 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각체의 작품이 섞여 있는데, 「화양서원(華陽書院)」·「만동묘(萬東廟)」 등의 시에 저자 당색의 위치와 존명사상(尊明思想)이 잘 나타나고 있다.
상소에도 탕평책을 반대하고 시비는 가려야 한다는 「정부청파후인구소(政府請罷後引咎疏)」 등이 있다. 서(序)에는 김원행(金元行)의 회갑을 축하하는 것과 임성주(任聖周)의 문집에 대한 「녹문집서(鹿門集序)」가 수록되어 있어 그의 교유관계를 알게 한다.
김근행(金謹行)·임성주와 주고받은 서간 3편은 모두 심성이기(心性理氣)를 토론한 것이고, 또 임성주와 논변한 「지서문답(池西問答)」 1편은 심성·기질에 관하여 문답형식으로 서술한 장편의 글이다.
「원론(原論)」은 동인 및 소론을 비판하여 노론의 처지에서 당쟁의 시말을 논술한 것이다. 저자는 「충역변(忠逆辨)」을 지어 소론을 공박하다가 많은 분란을 일으킨 인물이므로, 당시 정치사정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이밖에 100여편에 달하는 묘도문자(墓道文字) 등은 주로 노론계 인사의 전기이다. 판서에까지 오른 인물로 시부에 관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