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하회마을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는데, 양진당(養眞堂)과 더불어 북촌을 대표하는 집이다. 마을 중심부 북촌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도성(柳道性)이 1864년(고종 1)에 건축하여 수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남향한 一자형 대문간채와 ㅁ자형 몸채, 一자형 사당간채, 그리고 서남향한 별당채로 구성되었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서쪽 3칸이 광이고, 대문간 1칸, 그 동쪽으로 광 2칸과 외양간 1칸이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곧 사랑마당이 되는데, 이 마당에 남향한 □자형 몸채의 전면 서쪽으로 작은사랑채가 있다. 동쪽으로 사랑채, 그리고 그 사이에 두 사랑채의 온돌방에 불때는 아궁이를 둔 중문간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의 사랑채는 중문간 동쪽으로 사랑방 2칸, 대청 1칸을 두었는데, 전면에는 반 칸 폭의 개방된 퇴를 두었다.
뒤로는 벽장광과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은폐된 통로를 두었다. 동쪽끝 1칸 대청의 ㄱ자로 꺾인 북쪽에 1칸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이는 서고(書庫)로 쓰인다. 이의 북쪽에 2칸의 돌아들어서는 중대문간이 자리 잡고 있다.
작은사랑은 아궁이를 둔 중문간의 서쪽으로 1칸의 온돌방, 1칸의 대청을 두고, 전면에 반 칸 폭의 개방된 툇마루를 두었으며, 북쪽으로 꺾인 곳에 1칸의 온돌방과 2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대청과 연이은 방은 작은사랑채에서 쓰지만, 2칸의 온돌방은 안채 부엌 아랫방인 것이다.
안채는 서북쪽 모서리에 4칸의 큰 부엌을 두고, 이의 동쪽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안방을 두었다. 안으로는 4칸으로 나뉘어 마치 함경도지방의 田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부엌 쪽 전면 1칸이 안방이고, 이의 북쪽 1칸은 의걸이 등을 놓아두는 곳이며, 동쪽 전면방은 안방의 윗방이다.
이의 북쪽방은 찬방으로도 쓴다. 안방의 동쪽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인데, 안방에서부터 연속된 반 칸 폭의 개방된 툇마루가 앞에 붙게 된다. 대청의 동쪽은 2칸 크기의 윗상방이 있고 이의 남쪽으로 반 칸 폭의 툇마루를 두고 다시 1칸의 아랫상방이 있다.
전자는 며느리방이고, 후자는 노모의 방이었다. 서남향한 一자형 별당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온돌방과 대청 ·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몸채의 사랑채는 최근 수리에 잘못 고쳐 쌓은 견치석쌓기의 기단 위에 방주를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납도리집이다. 그러나 이와 연이은 안채는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대청 전면 3개의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기둥에는 주두(柱頭)를 놓고 창방 위에 소로받침을 두어 굴도리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5량(樑)의 굴도리집으로 꾸몄다. 처마는 홑처마로 합각을 크게 형성하여 팔작지붕모양을 이룬다.
별당채는 사고석바른층쌓기의 기단 위에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정면 7개, 후면 7개, 대청 중간 1개는 모두 두리기둥들이며, 홑처마의 팔작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