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유성룡(柳成龍)이 『징비록(懲毖錄)』(국보, 1969년 지정)을 집필한 곳으로 전하여오는 바, 그의 만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의 화천(花川) 북쪽 부용대(芙蓉臺) 동쪽 강가에 자리 잡고 있어, 나룻배로 마을을 드나들게 되어 있다.
정사는 대문간채 · 살림채 · 사랑채 · 별당채로 구성되고, 이들은 각각 독립된 채로서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동남향하여 정면 6칸, 측면 1칸이고, 이곳에는 측간(厠間)과 광들이 자리 잡고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안쪽 서쪽으로 동서향으로 면한 살림채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자리 잡고 있다.
북쪽에 온돌방 2칸을 두고 앞뒤로 반 칸 폭의 퇴를 두었는데, 동쪽은 벽체로 막아 방에서 쓰고, 서쪽은 개방하였다. 온돌방 옆 남쪽에는 부엌간을 두고, 그 옆으로 온돌방을 동서로 연이어 배치하고, 서쪽과 남쪽에 툇마루를 두었다. 살림채의 서쪽에는 별당채가 남향하여 하회마을을 굽어볼 수 있도록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별당은 동쪽에 대청을, 서쪽에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다. 그리고 전면에 개방된 반 칸 폭의 툇마루를 두었는데, 유성룡은 주로 이곳에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별당채의 서남쪽에는 一자형 사랑채가 남향하여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 크기로 동쪽부터 방 1칸, 대청 2칸, 방 1칸을 두고, 앞뒤로 반 칸 폭의 퇴를 두었다. 이들의 구조는 모두 홑처마의 팔작집으로 방주(方柱)와 납도리로 결구되었고, 방에는 띠살창호를 달고, 대청 옆과 뒤쪽에는 판문을 달았다. 담장은 강가 전면과 안채 남측 벽 중간과 강가, 사랑채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쌓고 일각대문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