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하회마을 북촌의 화천(花川)과 부용대(芙蓉臺)를 바라볼 수 있도록 북향한 이 정사는 유성룡(柳成龍)이 34세 때 은거하였고, 병환 중 요양하던 곳이다.
一자형 평면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북향한 평면의 동쪽 끝에 1칸의 대청을 두고, 그 서쪽으로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방 사이는 장지로 나누었다. 대청과 방 전면에는 반칸폭의 개방된 퇴를 두었다.
정사의 서쪽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 누(樓)로 된 연자루(鷰子樓)가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서는 부용대와 화천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또 하회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구조는 어느 정도 다듬은 막돌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정면에 두리기둥 4개를 세웠다. 도리는 납도리이고, 5량가구(五樑架構)의 홑처마 맞배집인데,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연자루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상면을 장대석으로 마무리하고 막돌초석을 놓고 9개의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2층에는 중앙기둥을 없애 넓은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기둥 윗몸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하나를 내고, 다시 주두 위에 걸친 보머리를 쇠서모양으로 하여 마치 2익공(二翼工)처럼 꾸몄다. 가구는 5량이고 홑처마의 팔작집인데, 이층바닥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둘렀다. 사면은 창호와 벽체 없이 개방하여 조망하기에 편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