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고 하며, 전성기에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9칸의 장엄한 보광전(普光殿)을 중심으로 동쪽에 보응당(普應堂), 남쪽에 무집당(霧集堂), 서쪽에 청심당(淸心堂), 북쪽에 심검당(尋劒堂)이 있다. 보광전 뒤쪽에 있는 청풍루(淸風樓)와 향적전(香積殿)은 화려하기로 널리 알려졌고, 명부전과 용화전은 장중한 건물이었다. 천왕문(天王門) 및 좌우의 낭무(廊廡)는 42칸인데, 성행당(省行堂)·탁룡구(濯龍廐) 등이 여기에 속했으며, 해탈문(解脫門)·영송문(迎送門)·금강문(金剛門)·조계문·불이문(不二門)·단속문(斷俗門) 등이 차례로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초기부터 숭유배불(崇儒排佛)정책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폐사가 되었다. 유물로는 높이 22척(尺)에 달하는 오층석탑이 있는데, 상륜부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절에는 흰 닭과 지네에 관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 절에 운무(雲霧)가 끼는 날의 아침이면 한 사람의 승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승려의 수가 자꾸 줄어 5명밖에 남지 않았을 때, 어느 날 저녁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흰 닭 두 마리를 주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이 닭을 정성 들여 기른 뒤부터는 괴이한 일은 생기지 않았으며, 2년 뒤에 흰 닭은 수백 마리로 늘어났다. 흰 닭의 수효가 많아지자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으며, 저녁에 돌아올 때는 닭의 주둥이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승려들이 닭들을 따라가 보니 숲속에 있는 움막 같은 토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 토굴 속에는 큰 지네가 수없이 모여 있었는데, 흰 닭의 무리와 큰 싸움이 벌어졌다. 원래 상극상식(相克相食)의 동물인 지네와 닭은 이 싸움 끝에 모두 죽었는데, 그 뒤로 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