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카우트연맹 (Scout)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단체
우리나라에서의 보이스카우트운동을 총괄하고 있는 사단법인 청소년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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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리나라에서의 보이스카우트운동을 총괄하고 있는 사단법인 청소년단체.
설립목적

청소년들이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지역사회, 국가, 국제사회에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개인의 정신적·신체적·사회적·지적 잠재력을 개발하고, 평화와 이해, 협조의 증진 아래 자연세계 속에서 개인의 인격을 계발하고 사회발전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보이스카우트운동은 영국의 포웰(Powell, B.)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1907년 7월 포웰은 자신이 군인시절에 착안하고 경험하였던 여러 가지 훈련법을 실천에 옮겨보기 위해 여러 계층의 소년 21명을 대상으로 브라운시섬(Brown Sea Island)에서 실험야영을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이 훈련법이 소년들에게 유익하다는 확증을 얻게 되었다.

다음해인 1908년 『소년을 위한 스카우트활동(Scouting for Boy’s)』이라는 책을 펴내는 것을 계기로, 영국 내에 보이스카우트가 조직되었다. 이때부터 스카우트운동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 전 세계적으로 이 운동을 거쳐 간 사람만도 2억 5,0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2년에 창설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식민지교육과 탄압에 눌려 분쇄되는 운명에 놓였던 소년운동은 민족지도자들에 의하여 재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 속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한 원대한 계획도 은밀히 내포되어 있었는데, 당시 국제적인 친선과 우애를 표방하였던 보이스카우트운동은 이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소년들에게 야영·모험·개척·활동 등을 통한 다양한 훈련을 받게 함으로써 심신을 단련시킴은 물론 나라를 위한 일에 큰 몫을 해내도록 하였다.

1922년 10월 이러한 스카우트운동에 뜻을 둔 조철호(趙喆鎬)는 중앙고등보통학교 후원에서 8명의 소년으로 조선소년군(朝鮮少年軍)의 창립과 함께 경성제1호대(京城第一虎隊)의 발대식을 거행하였고, 같은 무렵 정성채(鄭聖采)는 중앙기독교청년회(YMCA)내에 조선소년척후대(朝鮮少年斥候隊)를 발족시켰다.

조선소년군과 조선소년척후단은 조직의 기반이나 지도방법 등에서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스카우트정신을 근간으로 지(知)·덕(德)·체(體)를 겸비한 훌륭한 시민을 양성하는 전인교육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이 두 단체는 3·1운동 5주년을 맞이한 1924년 3월 1일을 택하여 통합, 민족지도자인 이상재(李商在)를 총재로 추대하고 소년척후단조선총연맹을 결성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스카우트운동이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는 등 자국에 이롭지 않다는 점을 간파하고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7월 31일 파고다공원에서 시국강연회가 개최되었을 때, 장내정리를 맡은 보이스카우트단원들이 맨 항건에 태극마크와 무궁화꽃, 그리고 ‘ㅈㅜㄴㅂㅣ’라는 한글 낱자가 도안되어 있는 것을 빌미로, 일본경찰은 문제의 항건을 압수하고 지도자들을 수배하여 구금하는 한편, 같은 해 9월 3일 단체를 강제 해산시키고 말았다.

1945년 광복을 맞아 스카우트운동을 재건하려는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1946년 3월 1일 사단법인 대한보이스카우트 중앙연합회라는 명칭으로 재건되었으며, 1947년 8월 조선소년단으로, 1948년 국호변경에 따라 대한소년단으로, 1966년 2월 보이스카우트한국연맹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어오다가 1968년부터 현재의 사단법인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으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의 보이스카우트운동은 6·25전쟁 중에도 계속되었다. 1951년 1월 부산에 임시중앙본부가 설치되어 스카우트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52년 8월 피난지 부산 일광해변에서 제1회 한국잼버리를 개최하였다. 특히, 전시 피난지에서는 치안유지를 돕고 구호활동을 벌이며, 소년들에게 나라를 위한 충성에 이바지하도록 하였다.

1953년 1월 31일 세계연맹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여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69년 7월 「스카우트활동 육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 공포됨으로써 사회적 보호와 국가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1983년에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세계연맹 이사국으로 피선되었으며, 국회 내에 스카우트의원동우회(현재의 스카우트의원연맹)가 발족되었다. 또한, 보이스카우트활동의 지원·육성을 목적으로 한국보이스카우트지원재단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기능과 역할

오늘날 40여 만 스카우트가족을 거느릴 만큼 급성장한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의 주요 활동은 청소년의 심신수련을 위한 각종 활동과 더불어 반제교육, 진급제도, 기능장 취득제도 및 야외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스카우트 행사를 통한 국제교류활동이 증대됨으로써 우리나라 청소년상을 세계에 심고, 민간외교사절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특히 1991년 8월 제17회 세계잼버리를 개최할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밖에도 창립 65주년 기념사업으로 전개하였던 호국유적답사활동에는 30여만 명의 스카우트대원과 지도자가 참여하였으며, 1997년 창립 75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도자대회를 개최하였다. 1998년 4월 24일에는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회관이 준공되었고, 1999년 8월에는 제1차 한일청소년 교류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청소년 교류활동이 국제적으로 활발해졌다.

현황

2008년 제14대 강영중 총재가 취임을 한 뒤 제55회 세계스카우트지원 재단회의, 제10차 세계 유스 포럼, 세계대학생 문화대축제, 제38차 세계총회, 국제청소년 야영대회 및 제12회 한국잼버리를 개최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의 성곽과 봉수대를 집대성한 『한국의 성곽(城郭)과 봉수(烽燧)』를 발간하여 학계·문화계 등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청소년교양지 성격의 월간 『보이스카우트』와 계간 『스카우팅』, 1997년에 『소년대』와 1998년에 『스카우트노래집』을 발행하는 등 출판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참고문헌

『소년을 위한 스카우트활동』 (김규역 역,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86)
『지구촌의 작은 영웅들』 (이휘영 역, 1985)
『한국보이스카우트 육십년사』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84)
한국스카우트연맹 (www.scout.or.kr)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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